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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도심, 흔들리는 청년 <TOYKO!, segment>
2022-03-29

 


사진 출처: 네이버 ‘TOKYO!’ 영화정보_포토_스틸컷


 

흔들리는 도심, 흔들리는 청년


<TOYKO!, segment - 아키라와 히로코, 미셸 공드리, 2008>


어떤 창구


 안녕하세요, 방토토맨입니다. 공익활동 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되며 첫 게시글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대전 시민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마주하고 있는 정서 또는 현실을, 영화라는 창구를 통해 소통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형식이 다소 낯설지 모르겠으나, 영화도 현실도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집에 돌아가는 길, 어느 계단을 오를 때, 잠들기 전, 읽으시는 글의 화두들이 한 번이나마 떠오른다면 좋겠습니다.


 

단란한 기운


 일본 도쿄라는 도시를 타국의 영화감독 세 명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한 영화 ‘TOKYO!’, 그 세 개의 작품 중 하나인 미셸 공드리 감독의 ‘아키라와 히로코’가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입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TOKYO!’ 영화정보_포토_스틸컷


 


 꿈은 있어도 누구 하나 쉽게 알아주진 않고, 변변찮은 벌이와 집도 없는 커플 아키라와 히로코가 있습니다. 남자친구 아키라가 제작한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극장을 찾아다니며, 포부를 안고 지방에서 도쿄까지 상경했지요. 자존심은 쉽게 굽혀도 낮아지지 않을 자존감을 아는 둘은, 아기자기하고 단란한 기운으로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도쿄에서의 그들은 급한 대로 친구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기로 합니다.


 그런데 일자리는 도통 구해지지 않고,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상영한 영화는 누구의 마음에도 쉽게 가닿진 않습니다. 잠들기 전 친구의 애인이 하는 앞담화까지 듣는 수모도 겪지만, 곰살을 부려가며 어떻게든 친구의 집에 머물러 봅니다.


 허나 감독은 얄궂게도, 쉽게 그들의 거취를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발품을 뛰어도 여전히 일을 구하긴 힘들고, 집을 알아보는 사이 주차해둔 차는 견인되기까지 합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이라는 것이 의지라는 것 하나로 쉽게 여기저기 배열할 수 있는 것일까요? 때론 마음이란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닐진대, 아니나 다를까 히로코는 친구의 집 냉장고를 몰래 뒤져 음식까지 훔쳐먹는 현실, 아키라의 상영을 도와왔어도 자신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모른다는 비루함에 도망치기로 합니다.


 일종의 용기일지도 모르는 히로코의 방황에 어떤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몸이 점점 의자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상황, 길거리를 도망치는데 두 발이 점점 의자 다리가 되어갑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TOKYO!’ 영화정보_포토_스틸컷


 

도심 속 유령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정말 의자가 되어버렸어요. 자유자재로 의자와 신체를 넘나드는 의자, 아니 인간이요. 그런데 히로코는, 다시 집을 구하고, 일을 구하고, 견인된 차를 찾아 방황하느니, 어느 골목에서 누군가 자신을 주워가길 바라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느 음악가가 그 의자를 주워 자신의 집에 두기로 합니다. 히로코는 그렇게 음악가의 집에 의존하는 삶을 택하게 되고, 아키라에게 편지를 씁니다.


 난 빌딩 사이에서 유령들과 지내고 있어


 



사진 출처: 네이버 ‘TOKYO!’ 영화정보_포토_스틸컷


 


단란한 도심, 유령 같은 청년들


 한국에서나, 만국의 청년들이 공통으로 겪는 평면적 문제들이 영화에 잘 녹아 대변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의 문제점들을 굳이 얘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발견한 것은, 이 집값부터 일자리까지 낙폭을 거치는 흔들리는 도심 속, 아키라와 히로코에게서 보이는 당연한 단란함과 자존감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봐온 가까운 사람들-청년들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회적 관계, 질서라는 최소한의 기준은 점점 사려가 깊어지고, 세심해지고 있다. 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군중심리는 유대와 연대, 공감과 감수성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마 당연하게 겪어온 심상과 생채기에 대한 일종의 대응이 하나하나 교집합 되어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에도, 피학을 가학으로 상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현실에서 넘어설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하여, 자존심은 차치해도 자존감은 지킬 줄 알고, 서로의 마음을 지켜낼 줄 아는 용기. 고작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체념과 의존이 되어버립니다. 저는, 체념과 타인에 대한 의존이라는 것이 욕망이 배제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나신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영화 또한 살색의 나무 의자와 알몸의 히로코가 교차하는 것을 보여주었을 거라 생각하고요.


 저는 어떤 용기들이, 과락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현실 앞에 고작 텅 빈 자존감이나 용기, 어떤 원룸의 도어락을 누르는 아픈 뒷모습 같은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이 좀 안돼도 더 욕망하고, 더 나아가 보았으면 합니다.


 빌딩 속 유령을 누가 알아주기나 할까요? 바로 저와, 이 글을 읽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상태이건, 갖고 있는 작고 다양한 배려와 힘, 용기 같은 것을 저와 제 주변 사람들에게서 떠올려보며 이 글을 마칩니다.


영화 속 다른 두 작품은 한국의 봉준호 감독, 프랑스의 레오 카락스 감독이 연출하였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도쿄를 담아내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함께 비교하며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